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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원의 관광명소와 춘향이야기

2013년 04월 16일(화) 19:15 [순창신문]

 

ⓒ 순창신문

“춘향이 어딨어, 광한루 안에 가면 있어?”라며 걸음이 빨라지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광한루 출입문인 ‘청허부’를 들어서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얘기를 혼잣말처럼 뱉어내며 종종걸음을 재촉하던 곳 광한루.
청허부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팽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춘향전의 발상지이며, 우리 민족 가슴가슴에 영원한 사랑을 구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지침서 역할을 해오고 있는 춘향전과 광한루. 우리나라 대표적인 정원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을 광한루원에는 천 년을 뛰어넘는 춘향의 사랑이 간직돼 있다.
춘향전으로 더욱 유명해진 광한루는 춘향전의 이몽룡이 멀리 그네를 뛰고 있는 춘향이를 바라보는 장면의 등장으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면서 더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정원과 누각이 어우러져 유명세를 탄 광한루원은 진주 촉석루와 같이 지방의 관료들이 중앙무대의 고위관료를 접대하며, 시조와 함께 춤과 노래로 흥을 즐기던 곳이었다. 접대를 위한 연회의 장소였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전에 남원부 관아에서 만든 정원 광한루는 춘향전이 만들어지면서 한층 유명해졌다. 광한루는 사랑의 운치를 더하는 누각과 더불어 춘향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세상에 우뚝 섰다.
춘향전은 설화로 전해지다가 판소리꾼에 의해 판소리계 소설로 태어나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과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차원이 다른 춘향전은 우리 민족의 사랑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로미오와 출리엣과는 다른 방법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춘향전은 숙종 때 씌여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는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혹자는 제작 연대를 영,정조 시대로 보기도 한다. 때문에 제작연대 자체를 미상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광한루를 운치있게 감싸고 있는 광한루 앞의 완월정은 ‘달을 맞이해 달과 친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광한루가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라면, 완월정은 인간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한 염원을 담아 지어진 전통양식의 누각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말이면 완월정에서는 남원국립국악원 회원들이 나와 춘향가와 민요 등의 판소리를 선보이며 노래로서 관광객들에게 춘향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성 참판과 퇴기 월매 사이에서 태어난 춘향이는 광한루에서도 올려다보이는 지리산 반야봉에서의 기도로 태어났다고 춘향전은 전하고 있다. 잉태시점부터 신비로움을 지닌 춘향이의 출생에 대한 것은 춘향전이 고전소설적인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은 ‘옥중화’, ‘춘향화’, ‘열녀춘향수절가’ 등으로 숱하게 번역되었는데, 그 이본만 해도 12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완월정 앞을 흐르는 호수는 광한루 밖의 요천이라는 강에서 끌어들인 물길로, 이는 관찰사로 있었던 송강 정철의 재임시절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 전면 동서 양편에 평호(平湖)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하게 했다. 못 안에는 세 개의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섬과 봉래섬, 영주섬이었다. 또 요천은‘여뀌 꽃’이라는 꽃이 많이 피어 이를 따서 요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원을 흐르고 있는 물길은 멈춰있는 물이 아니라 항상 순환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과학적인 수로공사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광한루 뒤편에는 춘향 영정이 봉안된 춘향사당이 있다. 춘향사당은 1931년 남원의 유 지였던 이현순(남)이란 사람이 기금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단오날에 맞춰 춘향사당 준공식이 이뤄졌는데, 준공식과 더불어 춘향의 첫 제사도 함께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춘향에 대해 제사를 지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 전통을 이어오던 것이 춘향제 축제가 됐다. 춘향제는 올해로 83회를 맞았으며, 매년 4월 26일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춘향제는 우리나라 축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춘향제는 당시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지켜온 민족의 자존심이었다.
춘향의 영정을 봉안한 춘향 사당의 중앙에는 ‘열녀춘향사’라는 현판이 있다. 현판 바로 아래에는 별주부전에 나오는 토끼와 자라의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토끼와 자라의 지혜로 조국 독립을 이뤄야한다는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열녀 춘향의 굳은 절개를 영원히 흠모하기 위해 건립된 춘향사당의 입구 대문의 이름은 ‘임향한 일편단심’을 줄인 ‘단심문’이다.
또 광한루 앞에 놓인 오작교는 1년에 한 번만 밟으면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오작교를 흐르는 물은 지리산 천갈래의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된 요천강의 물을 받아 만든 연못을 가로질러 놓은 돌다리다. 오작교 밑에 뚫린 4개의 구멍은 좋은 기운을 흐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한루 해설사는 오작교 아래 연못에 살고 있는 수십년된 잉어는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믿기지 않는 말을 남겨 광한루의 신비로움을 더했다. 광한루의 연 관광객은 작년말 기준 100만명이 넘었다.
청허부 안에는 월매집이나 춘향관, 그네뛰는 장소 등이 있어 그네를 뛰어볼 수 있다. 월매집은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으로, 집 안에는 월매가 다른 여인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재래 부엌에서는 향단이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면이 연출돼있다.
월매집은 춘향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뛰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해 춘향이 살고 있던 월매집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것으로 고전소설 춘향전은 전한다.
춘향전의 주 무대인 광한루는 1419년 세종원년에 황희정승이 ‘광통루’라 이름지어 건립한 누각이다. 이를 1444년 세종 26년에 정인지가 광한루라 개칭했다. 광한루는 1597년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전소됐다가 1626년 인조 4년에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했다.
1963년 1월 보물 281호로 지정돼 내려오다 2008년 1월에 명승 제33호로 재지정됐다.
청허부 안에 있는 춘향관과 월매집, 그네, 선취각은 남원시가 소설을 무대로 연출해 놓은 시설들이다. 춘향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춘향이와 이몽룡이 실존인물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육모정 앞에 있는 ‘춘향묘’는 가묘로, 1990년에 조성된 것이다. 시청 관계자는 육모정 앞에 가묘를 쓴 이유에 대해 “주천면 육모정 근처에 춘향무덤이 있었다는 사람들의 구전에 의해 그곳에 가묘를 쓴 것 같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춘향전을 통해 변치않는 사랑과 절개를 배우고 있다. 남원 사람들은 춘향전과 고서적을 통해 그 시대의 춘향의 모습을 그려 영정을 완성하기도 했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춘향이 실존인물이었는지에 대해 맞춰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구전에 의하면 춘향이는 실존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남원 땅에 있을 법한 월매의 생가나 춘향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구전을 기저로 한 한 가지 추측이 가능해진다.
춘향이는 실제로는 아주 못생긴 기생이었다는 설과 가난한 집의 추녀 규수였다는 설이 구전된바 있다. 못생긴 까닭에 남자의 사랑을 얻을 수 없었던 춘향이는 상사병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으로 구전은 전한다. 때문에 춘향무덤이나 생가 등이 전해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소설 춘향전에서처럼 춘향이가 이몽룡을 다시 만나 행복한 결말을 맺었다면 춘향묘와 월매의 생가 등이 전해 내려오지 않을리 없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연대미상, 작자 미상인 춘향전은 불쌍하게 죽은 추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이야기라는 설이 구전에 의해 전해졌다.
한편 남원시는 춘향전을 테마로 춘향테마파크를 조성해 관광지의 명소로 삼고 있으며, 만민의총이나 허브축제, 바래봉 철쭉제 등 다양한 관광지를 조성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바래봉 철쭉제는 철쭉 군락지인 바래봉에서 4월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철쭉을 이용해 관광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만민의총은 사적 제272호로 남원시 만인로 3번지에 있다. 만민의총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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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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