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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 철학아카데미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0년 11월 19일(목) 11:38 [순창신문]

 

ⓒ 순창신문



인간은 말과 글로 의사소통을 하고 타자를 이해한다. 말은 움직인다. 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법이 없다. 데리다가 말한다.
"말에 든 어떤 정확성을 청취해 내는 일은 <말의 보폭步幅>, 즉 말이 입 밖에 나올 때 가미되는 리듬과 박자의 크기를 측정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에도 보폭이 있다는 말. 참으로 울림이 큰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한글을 공통어로 대화를 나누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말의 보폭은 어느 누구도 같지 않다. 필자는 말의 보폭에 민감하다. 하여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녀)의 첫 인상은 말의 보폭에서 온다. 그(녀)의 외모나 지위보다 그(녀)의 말이 주는 리듬과 박자가 먼저 다가와 필자에게 미묘한 울림이 되어 긴장감을 주거나 유쾌함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과 글에 대하여, 즉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에 대하여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 철학자 중 한 사람이 데리다이다. 데리다는 1930년에서 2004년까지 지구별을 여행한 프랑스의 철학자다. 80여 권의 저서, 수백 편의 논문과 인터뷰를 남겼고 사후에도 그의 저작들이 꾸준히 책으로 출간되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그의 철학은 플라톤, 데카르트, 루소, 헤겔, 니체, 후설, 하이데거, 레비-스트로스, 블랑쇼 등을 경유해야 한다. 따라서 데리다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의 산을 넘어야 한다. 필자도 10년쯤 데리다를 공부하고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고 읽고 또 읽으니 이제야 조금씩 그의 언어들이 가슴 안으로 들어와 울리기 시작한다. 데리다는 니체를 끌어와 말한다. 철학을 하려면 더없이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니체가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귀에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체험해야 한다. 왜냐하면 체험하지 않고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으니까. 새로운 경험의 질서에 대해 처음으로 말하는 새로운 언어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들을 만한 것>도 있을 리 없다고."

이 문장의 의미는 이러하다.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것을 알지도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세상이.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세상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러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짐짓 모르는 체한다. 두려움 속에 존재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의 자유. 하지만 무지無知는 자유自由가 아니다. '스스로 말미암는 것'을 자유라 한다면 알지 않기 위하여 무던히 성실하게 애쓴 노력의 결과물인 무지는 결국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배우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물인 무지는 어느 순간 결정 불가능성,에 도달한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능동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아포리아aporia라고 부른다. 아포리아란 '여러 길의 교차점에서 부닥친 결정 불가능성'을 뜻한다.

일상을 운용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고 삶을 살아내느라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철학이란 먼 이야기이며 때로 사치스럽게도 들린다. 하지만 아니다. 삶을 살아내는 것이 힘에 부치고 고통스럽다면 우리는 사유의 세상으로 걸어들어와야 한다. 왜 불안한지, 무엇이 불안하게 하는지, 왜 고통스러운지,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사유에 그 답이 있다. 말하자면 내게 주어진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생각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올 테니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내 앞에 놓여진 결정 불가능성의 상황을 차근차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사유思惟는 본질상 <제어制御하는 힘>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사유는 미지未知를 기지旣知로 환원하여, 미지의 신비를 분산시켜, 미지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미지를 밝히고자 여념이 없다. 미지에 이름을 붙이고자."

이 문장의 의미는 이러하다. 사유는 알지 못해 불안한 상황을 이미 아는 것, 익히 아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몰랐을 때는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알고 나면 이웃처럼 자연스럽고 친숙해지는 것이다. 고통으로 해석되던 상황들을 공깃돌처럼 가벼워지게 만드는 힘. 사유의 힘이다. 데리다는 바로 이런 철학자라고 한다. 사유하게 강요하는 철학자.

이 책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철학자 진태원이 쓴 데리다 편을 읽는다. <해체>와 <원기록>, <차연 또는 차이> 그리고 <유령들>의 데리다적 정의를 설명한다. 데리다는 우리에게 매우 꼼꼼하고 정교한 독서를 요구한다. 소리로 의사소통을 할 줄 알게 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성을 느껴 기호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문자기록이 되었다. 문자기록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내용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그것을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텍스트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한 독법讀法에 도달하기.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되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책 너머의 책, 저자의 의도를 넘어서 그 바깥을 <발견>할 수 있는 독법에까지 도달하는 것. 그리하여 삶의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해결하기 어려운 결정 불가능성의 아포리아aporia에 도달하는 것. 그러나 그 너머, 전혀 다른 <방법>이나 새로운 <시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문제나 고통 자체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드는 지점까지 걸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철학의 힘이며 매력이다.*

ⓒ 순창신문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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