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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에릭호퍼 지음

2020년 10월 15일(목) 17:10 [순창신문]

 

ⓒ 순창신문



미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이 내어 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철학자라는, 순수한 미국 출신 철학자였던 에릭 호퍼. 그는 1902년에 지구별에 도착했다. 그의 별명은 '길 위의 철학자'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는 평생을 독학으로 공부해 학문에 일가를 이룬 매우 독특한 이력을 지닌 지구별 여행자다.
아버지는 독학한 가구 제조공이었는데 100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와 독일어. 어린 에릭은 100권의 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책들의 크기와 두께, 표지 색깔 등으로 분류하는 게 어린 그가 가장 재밌어하는 놀이였다. 영어와 독일어를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익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놀이처럼 즐겼기 때문에.

7살 때 계단에서 떨어진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어버린 에릭은 15살 때까지 암흑 속에서 살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에릭은 9살 때 아버지가 선물해 준 음악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 음악은 에릭의 삶에서 귀하게 자리 잡는다. 아버지는 뉴욕의 콘서트홀로 에릭을 데려가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함께 들었다. 천상의 멜로디를 들으며 황홀해 하던 아버지를 에릭은 기억한다. 3악장이 연주될 때 아버지는 에릭의 팔을 움켜잡으며 가슴에 가득 차버린 감동을 에릭에게 전달했다. 후에 에릭은 힘이 들고 외롭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 때마다 3악장을 흥얼거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8살 때부터 세상을 주유하기 시작했던 에릭이 39세가 되어 정착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축음기와 베토벤 교향곡이 담긴 레코드를 산 일이었다. 책과 음악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에릭.

에릭의 아버지는 에릭이 18세가 되었을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의 손에 300달러가 쥐어졌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나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했다. 그의 '길 위의 철학'적인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300달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시립도서관 근처에서 싸구려 방을 하나 빌려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가져온 돈이 다 떨어지자 사흘을 굶었다. 굶은 지 사흘이 되자 누군가가 위를 쥐어짜면서 가슴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물을 마실 때는 벌에 쏘인 것처럼 머리가 따끔거렸다. 배고픔의 극한 상황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는 한 식당에 들어가 그릇 닦는 일을 하겠다고 사정한 뒤 한 끼를 얻어먹었다. 며칠을 굶었으니 그가 먹은 밥은 얼마나 짜릿하고 감동스러웠을까. 식당에서 밥값으로 그릇을 닦은 후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직업소개서를 향했다. 돈이 없으니 이제 일을 해야 했다. 신기하게도 에릭은 돈을 어느 정도 벌면 책을 읽기 위해 일하기를 멈췄고 돈이 없으면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그는 책을 읽는 사람이었으므로 상황을 무기력하게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늘 일정한 상황이 주어지면 그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충분히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책을 통해 배웠다.

직업소개소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18살 에릭은 거칠게 살아온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자신에게 일이 주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직업소개서 담당자는 전화벨이 울리면 짧은 통화를 하고 아주 짧은 사이에 일자리를 구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 중 몇몇을 골라 일을 주었다. 에릭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구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담당자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연구했다. 담당자는 일자리를 사람들에게 불러 주고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빠른 속도로 찾아냈는데 에릭은 그가 다섯째 줄까지는 그냥 지나치고 여섯 번째 줄에 시선이 머물 때가 많고 붉은 종이로 싼 책이 담당자의 눈을 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걱정이 많고 초조해 보이는 사람의 시선은 지나쳤고 명랑한 모습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담당자의 패턴을 인지한 뒤 에릭은 숲을 이룬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일자리를 찾는 일에 이력이 붙기 시작했다. 에릭은 입에 풀칠하기에 충분한 일용직을 구할 수 있었고 열심히 일하고 번 돈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사색했다. 여유가 생기면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몇 년이 지나자 수학, 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을 대학 교재로 독학할 정도로 지적인 능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해졌다. 그는 늘 노트를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글을 쓰고 적확한 형용사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기록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보냈으니 그는 서서히 길 위의 철학자로 변모해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쓴 첫 책은 49세에 쓴 [맹신자들]이다. 사회의 밑바닥을 구성하는 노동자로서 경험한 수십 년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가감없이, 미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언어는 냉철하다.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답게 그는 사회적으로 결핍된 사람들의 삶을 깊은 시선으로 들여다볼 줄 안다. 그의 아포리즘aphorism을 읽으면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몇 번씩 곱씹어보면 인간 본성을 꿰뚫는 서늘한 지점에 도달한다.
그의 아포리즘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심한 불만dissatisfaction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거나,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사람과 일체감을 강하게 느낄 때, 놀랍게도 우리는 어떤 곤란이나 모욕도 아무 고통 없이 견뎌낼 수 있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험난한 시간을 보냈지만 공부를 통해 점점 정신적 풍요의 공간에 도달했다. 그는 경제적 궁핍을 통해 자신의 무가치함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자기존중감self-esteem에 도달했다. 그는 물질적 상태에 삶의 초점을 두지 않았다. 그는 물질은 수단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은 자기존중감에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튼튼한 자기존중감으로 정신 세계의 숭고함에 도달한 아름다운 지구별여행자이다.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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