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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오쇼 라즈니쉬

2020년 03월 25일(수) 15:11 [순창신문]

 

ⓒ 순창신문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오쇼 라즈니쉬의 말로 듣는다. 그의 언어로 듣는다. 언어는 사상을 담고 있으니 그의 철학을 듣는다. 오쇼의 [반야심경]은 그가 '쓴' 책이 아니다. 그가 '말'한 책이다. 그의 강의를 제자들이 책 꼴로 펴낸 것이다.
옮긴 이는 이윤기이다. 무언가를 옮기기 위해서 그는 그가 옮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미리 충분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동의해야 한다. 이윤기는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다른 종교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교의를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화나 종교를 보는 눈이 병적인 교조주의, 경직된 흑백 논리에 길들여져 진리를 편가르기 하는' 듯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이 이를 여러 이름으로 언표言表'한다는 베다 경전의 의견에 동의한다. 필자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오쇼의 [반야심경]을, 그의 해석을 읽으며 늘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 이렇게 음악 같은 문장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상들이, 이렇게 조화로운 지혜들이, 이렇게 자유로운 재해석이 가능하다니•••."

반야般若는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의 줄임말로 산스크리트 말로는 프라즈냐 파라미타prajna-paramita이다. 저쪽의, 저쪽으로부터 온, 저쪽에 대한 지혜.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이 세상 것도, 저 세상 것도, 모든 종류의 자기 동화를 완전히 초월할 때 비로소 오는 지혜를 뜻한다. 모든 자기 동화를 초월하고, 각성의 순수한 불길이 연기 하나 없이 남을 때 오는 것. 그래서 이 작은 경전은 '심경心經'이 되었다. 종교의 심장. 그리고 그 핵심.
오쇼는 어떤 사람들에게 종교는 목발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체온도 생명도 없이, 걷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매일 같이 붙였다 떼었다 하는 도구적 존재인 목발에 불과한 것은 아니냐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말한다. "무슨 일을 하건 그 일에 깊은 사랑을 기울여야 한다. 깊이 관여하고 크게 관심 갖고 성실과 진정을 다해야 한다. 실존을 송두리째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고.
"의족을 만들지 말 것. 진짜 다리를 발달시킬 일"이다. 우리의 삶이 따스해지고 가짜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웃고, 겉모양만 그럴 듯한 가짜 행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답도 건너오지 않을 때까지 나와 내 삶에 대한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

작금의 우리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질문을 잊어버렸다. 그저 내 앞에 놓인 삶의 무게만이 중요할 뿐이다. 다른 풍경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상황을 적확하게 들여다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답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오쇼는 말한다. 질문과 대답.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한쪽 면이 없다면 다른 한쪽 면 또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는 불타를 이해하는 데는 [논리]가 아니라 [변증법]적 사고가 요구된다고 본다. 불타는 논리적이라기보다 변증법적이라는 것. 그는 리얼리티에 이르는 두 개의 길을 제시한다. 논리와 변증법.
논리의 길은 서양 철학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길은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으며 한 길로만 나아간다. 반대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옳거나 그르거나,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다. 동지가 아니라면 모두 적이다. 선이 아니라면 모두 악이다. 지금 우리가 운용하는 세상은 이런 '논리', 그것도 이분법적인 논리에 지배되는 세상이다.

리얼리티를 지향하는 두 번째 접근 방법은 변증법적 접근이다. 이것은 정-반-합,의 과정을 밟는다. 변증법적 과정을 통하여 "삶은 대극을 통하여, 반대되는 것을 통하여 앞으로 움직여 나간다." 이것은 보다 실존적이다. 전기에 음극과 양극이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있는 것처럼, 낮과 밤이 있는 것처럼, 가시와 꽃이 있는 것처럼, 여름과 겨울이 있는 것처럼, 남과 여처럼, 아름다움과 추함처럼, 젊음과 늙음처럼, 육체와 정신처럼, 세속과 신처럼 모든 것은, 즉물적으로 보기에는 정반대되는 것들이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이 서로 만나야 삶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세상은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섞여 조화와 상생을 향해 간다. 명제가 반명제와 만나고 새롭게 통합된다. 이 통합 자체가 또 하나의 명제가 되고, 이 명제는 반명제를 낳아 보다 높은 차원으로 통합을 전개해 나가는 것, 이것이 생명이 진화하는 한 방법이라고 오쇼는 말한다.

대극對極은 상극相極이 아니다. 이는 상생相生을 지향한다. 그는 남자와 여자도 그렇다고 지적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한다?" 그는 이 명제에 대한 반명제를 이렇게 제시한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두개의 성性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 속에는 여자가 살고, 여자 속에는 남자가 살고 있다. 따라서 남자는 늘 남자다운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순간이 필요할 때를 잘 알아 반응해야 한다. 여자도 때로 공격적인 때가 있어야 한다. 분노, 방위, 저항하는 순간을 필요로 한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이것을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로 표현한다. 남자 속의 여성성을 아니마라 부르고 여자 속의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부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극히 변증법적 존재이다. 온전한 인간이기 위해서는 양성이 필요하다. 존재는 상호보완을 통해 온전함에 이른다. 전 생명과 전 존재가 상반되는 대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그 사실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대극과의 조화가 곧 상생의 길임을 배우는 것, 오쇼가 [반야심경] 해석을 통해 가리키는 방향이다. 진짜인 '나'와 진짜 아닌 '나' 사이의 틈, 이것은 허구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똑똑히 볼 것. 신조나 이데올로기나 경전이나 지식에 속지 말 것. 이 모든 것을 떨쳐버릴 것. 무조건 털어버릴 것. 그리하여 새로운 깨달음 안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창조, 그 자체가 될 것. 일사천리一瀉千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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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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